자유 게시판

송암공파 36세 허찬국 박사의 칼럼, 2023. 6. 23.

www.freecolumn.co.kr

타코와 서커스장(場)

2025.06.23

필자는 기후가 온화한 캘리포니아에서 1980년대 처음 접했던 멕시코 음식을 좋아합니다. 가난한 대학원생 시절부터 저렴하지만 밀·옥수수 가루, 각종 콩, 고추, 아보카도 등 여러 채소와 함께 육류가 흔한 재료인 음식은 맛있고 속이 든든해 자주 먹었지요. 물론 더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메뉴도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멕시코 사람들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에서 멕시코 음식점은 중국 음식점 못지않게 흔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 중식당의 대표 메뉴인 자장면, 짬뽕과 같은 멕시코 음식을 꼽는다면 타코(Taco)일 겁니다. 전병 크기의 작고 둥근 두 종류(부드럽거나 딱딱한) 외피를 반으로 접어 각종 야채와 고기 등 내용물을 담은 타코는 다양하고 간편해 인기가 높습니다. 바삭한 외피를 그릇처럼 만들어 그 안에 각종 내용물을 담는 타코 샐러드도 인기 메뉴지요. 타코 전문 식당 체인인 타코벨(Taco Bell)을 미국 전역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타코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Trump Always Chickens Out!”(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꼬리 내린다)이라는 말을 줄인 ‘TACO’입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 기자가 5월 초 처음 쓴 후 빠르게 퍼졌습니다. 미국과 주요국 주식시장은 트럼프 취임 직후 관세·무역 전쟁에 대한 공포로 크게 하락했었지요. 트럼프 정부는 이런 금융시장의 반응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공언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행태가 되풀이되는 것을 다룬 기사에서 사용한 표현입니다.

그동안 공격적인 관세나 무역 제한 조치를 발표한 후 며칠 있다 "협상을 위해 조치의 시행을 2주, 또는 2개월 연기한다"는 우화 속 양치기 목동의 ‘늑대다!’ 외침처럼 자주 되풀이되었지요. 대표적인 게 중국 수입품에 대한  140% 넘는 관세 부과 조치인데 중국이 희토류 금속 수출 금지 조치 등으로 맞받아치자 2개월 유예를 선언하고 협상에 나선 경우입니다. 본인은 ‘TACO’를 많이 싫어하는 모양인 것이 얼마 전 기자의 질문에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라”며 “내게는 엄청 불쾌한 질문이다”라고 강하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요.

트럼프는 후보 때 취임 첫날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큰소리쳤지요. 어제 미국이 이란을 공습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는커녕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철천지원수처럼 여기며 지내온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요. 좁은 지역에 인구가 밀집된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에 매우 예민합니다. 2년 전 하마스의 대규모 테러 공격을 계기로 위협이 될 수 있는 코앞의 친(親)이란 무장 세력(헤즈볼라, 하마스)을 무력화한 이스라엘은 이달 중순 이란의 핵시설을 주요 목표로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고 군 최고 지휘부와 핵개발 관련 과학자들을 살해했습니다. 그동안의 물밑 적대 행위가 공개적 전쟁으로 확대된 것이지요. 이번 공격에 대해 미국의 암묵적 승인과 지원이 있었겠지만 이스라엘은 더 직접적인 미국의 개입을 원했습니다.

이런 암울한 상황을 피할 방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바마 정부는 2015년 러시아·중국을 포함하는 주요국들과 함께 오랜 협상 끝에 경제 제재 완화를 대가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는 내용의 협정을 맺었습니다. 트럼프 1기 정부는 2018년 이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합니다.  사정이 녹록지 않습니다. 그의 지지 세력(MAGA) 핵심 인사들은 미국과 무슨 상관이냐며 중동전 직접 개입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란은 미국이 참전하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며 위협하고 있지요. 이란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도 다양합니다. 다수의 예상과 달리 어제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직접 공습했습니다.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치솟으며 우선 국제 유가 및 금융시장 불안 고조가 예상되고, 더 큰 충격이 뒤따를 전망입니다.  어떻게 전개될지 그야말로 오리무중입니다.

지난주 트럼프의 생일에 워싱턴 시내 중심부에서 미국 육군 창설일 기념 시가행진이 있었습니다. 병력과 구경꾼 규모, (당나라 군대를 연상시키는) 참가 군인들의 태도 모두 보기 민망한 수준이었습니다. 같은 날 미국 전역에서 열린 반(反)트럼프 항의집회(No Kings Day)에 이와는 대조적으로 수백만 명이 참가했습니다.

 

(왼쪽)6월 14일 No Kings Day에서 등장한 타코 항의 포스터(인스타그램 캡처)
(오른쪽)영국 일간지 Guardian의 6월 19일 No Kings Day관련 기사 사진 캡처

트럼프는 미국이 불법 이민자들로 인해 망하고 있다며 대규모로 색출하고 추방하겠다고 공언했지요. 연방 정부 당국의 단속이 확산되며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최근 캘리포니아주의 로스앤젤레스에서 불법 이민자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가 커지며 대통령이 군인들을 파견하는 미증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지사와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인 노림수로 문제를 침소봉대하고 있다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요. 대규모 농작물 생산지인 캘리포니아에서 멕시코 노동자들은 필수불가결한 인력입니다. 트럼프 지지가 압도적인 플로리다주에서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불법 이민자 단속의 충격에 놀란 농산물 생산자들의 로비로 농업관련 시설에서 단속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아마도 캘리포니아의 많은 멕시코 음식점들이 불법 이민자 단속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듯합니다.

“광대가 궁전으로 들어간다 해서 광대가 왕처럼 처신하는 게 아니라 궁전이 서커스장으로 변할 뿐이다"라는 튀르키예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 서커스가 끝나는 2029년 1월 20일 멕시코 식당을 찾아 넉넉한 음식과 마가리타를 즐겨볼까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목록

댓글 목록

입력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가 포함되거나, 상업성 광고, 저속한 표현, 특정인 또는 단체 등에 대한 비방,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 반복적 게시물, 폭력성 글등은 관리자에 의해 통보 없이 수정·삭제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홈페이지를 통하여 불법유해 정보를 게시하거나 배포하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1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